마케팅은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물건은 왜 파는 것인가?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업 유기체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생존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마케팅은 인간이나 동물의 생존방식과 매우 닮아있다. 생존은 먹이의 획득에서 번식까지 생명을 유지하려는 총체적 노력의 집합이다.
개인적으로는 동물의 생존행위를 ‘동물마케팅’으로, 인간의 생존행위는 ‘생활마케팅’으로 칭하고 있는데, 오늘 다루는 내용은 생활마케팅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생활마케팅은 곧 우리 삶 도처에 널린 잡동사니들에 대한 필자의 단상이다. 그러니까 철학적이고 교육적인 내용이 아니라, 가볍게 웃자는 취지의 글인 셈이다.
Co-Marketing
국내 굴지의 은행과 브랜드명을 공유하는 커피숍이다<그림 1>. 필자는 업주가 뛰어난 커피 품질을 담보로 한 Bargain-ing Power로 국민은행 측과 담판(?)을 벌여 상표권에 대한 문제는 극복했으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표명은 물론 세계 최고의 CI 회사 랜도(Landor)가 수십 억 원의 컨설팅료를 받고 개발했다는 ‘작대기 세 개’의 로고까지 저리도 당당하게 쓸 수 있겠는가? 간판 색까지 너무도 생생하게 살려놓아, 만일 필자라면 은행인 줄 알고 왔다가 커피매상을 올려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국민은행 측이 국민커피숍의 명성으로 상당한 마케팅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다방업계 암암리의 비밀(?)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사진을 보면서 업종을 넘나드는 유연한 사고에 경탄하고 말았다<그림 2>. 이것이야말로 국내 대기업 SK가 선경 시절 꿈꾸던 수직적 계열화의 완벽한 모델이 아니던가. 애견센터는 영양탕 집의 충실한 원료 공급원으로, 영양탕 집은 버림받은 견공들의 처리장소로서 Co-Marketing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게다가 영양탕 집의 상호를 보라. ‘어우렁 더우렁’이라는 상호는 영양탕집 업주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고객 입장에서도 애견방을 찾는 분들은 견공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더 한층 깊게 하고, 영양탕을 찾는 분들은 원재료를 감상하면서 식감을 돋게(?) 하는 탁월한 체험마케팅 효과까지 겸비했다 하겠다.
명확한 소구점
‘짱 노래클럽.’ 업소명만 봐서는 노래만 하는 곳인지, 소위 노래방 도우미가 나오는 곳인지 잘 파악이 안 된다<그림 3>. 그러한 고객들을 배려해서 ‘아가씨! 만지나 안 만지나, 2만원’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다. 비로소 우리는 ‘짱 노래클럽’이 노래도 부르고 만질 수도 안 만질 수도 있는 완전 자유방임의 ‘클럽메드형 노래방’임을 알 수 있다. 길 가던 초등학생들도 모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명쾌하게 소구점을 제시하고 있다. 정말 짱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쌍방울의 의미는 둘 중 하나다. 한국의 대표 섬유 브랜드를 의미하든지, 아니면 수컷들의 특수부위를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쌍방울이 빤쮸 상표로서 Category Meaning을 많은 부분 내포했다 할 수 있겠다. 어찌됐건 ‘숲 속의 쌍방울’은 설명이 별반 필요 없다<그림 4>. 설마 숲 속에서 빤쮸를 팔고 있지는 않을 테고, 업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절하게 ‘특수부위 전문점’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일부 여성분 중에는 이 특수부위의 시식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업주는 이러한 점까지 고려해 은유적이지만 명확하게 타깃을 대상으로 소구점을 제시하고 있다.
위협 소구
위협소구의 효과성은 업계에서 논란이 많은 이슈 중 하나다.
예를 들어 금연광고에 위협소구를 하게 되면 겁에 질린 사람들이 담배를 끊게 된다는 주장에 대해, 그러한 부정적 이미지가 ‘금연’이라는 이미지마저 부정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금연에 반발하게 된다는 반론이다.
그러한 이슈의 한가운데에서 화장실에 붙은 2개의 문구를 비교해보자. <그림 5>는 우악스러운 위협의 문구이다. 필자는 한때 의사들이 ‘혈관총(내치핵의 뿌리정맥)’이라 부르는 질병으로 고생한 바가 있어 저 문구의 섬뜩함을 알고 있다. 허나 자존심과 호기심 강한 사람들은 저렇게 위협할수록 굴하지 않고 도전정신으로 옥상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저런 문구의 효과성은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그림 6>의 문구 역시 위협소구지만, 새롭고 신선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알다시피 ‘피똥 싼다’는, 배우 백윤식 씨가 영화 속에서 뱉은 유명한 문구이다. 그런 면에서 물을 안 내리면 백윤식 씨가 금방이라도 화장실로 뛰어들며 “너 피똥 싼다”고 외칠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또한 문구를 보고 피식하는 순간, 위협에 굴하지 않으려는 도전정신 같은 것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즉 이 문구는 위협에 실감과 재치라는 장치를 더함으로써 위협소구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과 피똥이라는 적절성(Relevance)을 구축한 것 역시 커뮤니케이션적인 감각이 아주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아주 교훈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감 마케팅
‘내 마누라 외에 주차하면 혼난다!’<그림 7>.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문구로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내 마누라 이외의 타인이 이 장소에 주차하게 되면 주차장소의 관리책임이 있는 본인이 마누라로부터 깨지게 된다’는 한 공처가의 절규로 해석하고자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유부남의 한 사람으로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물통 주인을 만나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다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마누라에게 수시로 무시 받는 이 땅의 수많은 남정네라면 누가 감히 저 물통을 치우고 주차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물통의 옹색함은 물통 주인의 고단한 처지를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한층 더 보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야말로 가슴을 저미는 처절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릇 동물이 짝짓기를 하는 까닭은 후세를 양산하여 번창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자연의 섭리로서가 아니라 개체의 입장에서 볼 때 짝짓기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짝짓기 자체가 쾌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답안이 비록 선생님의 의도와 다르기는 하나 정답으로서 충분히 채점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그림 8>. 오답임을 채점한 빨간 작대기가 휘어져 있는 것은 채점자 역시 그러한 공감으로 인해 흔들렸던 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험인 듯한데, 그 어린 나이에 어찌 음양의 원리를 깨우쳤는지 자못 경외감마저 스치는데, 진정한 천재란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사실에서마저 인사이트를 끌어낸다는 실증을 보여주고 있어 대다수의 평범한 마케터들과 광고인들에게 좌절감마저 들게 한다.
비주얼의 중요성
오늘날은 영상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산업사회가 문자문화의 시대라면 ,지식사회는 영상문화의 시대다. 영상문화에서 구구한 설명은 구태에 불과하다. 그림 한 방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시대인 것이다. 모든 사회적 인프라와 감성이 그렇게 발전하고 있으므로 AE·AP들도 그림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자 이제는 한 방에 보내는(?) 그림들을 찾아보자.
<매일경제>에 실린 기사 제목과 사진이다<그림 9>. 기사 제목과 비주얼이 생뚱맞다고 느끼시는 분은 다른 일을 알아보도록 하자. 이 기사의 뉴스는 수많은 예방법 중에 하필 포경수술이 에이즈 감염을 줄인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사를 핵심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비주얼은 ‘포경’이다. 만일 고래잡이 어선 따위를 비주얼로 얹혔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는 너무나도 기발한 비주얼을 찾아내고 말았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경제신문의 엄숙주의는 하등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독자들에게 기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만이 있을 뿐이다.
필자 개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스포츠 신문에서 전직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운을 건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우리는 과연 미국에 이긴 걸까 진 걸까? 그 해답을 보여주는 명쾌한 사진 한 장이 있다<그림 10>. 그렇다. 가슴 아프지만 사진은 대한민국의 패배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FTA에 대한 수백 장짜리 분석보고서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당시 현장의 참담한 결과를 명확히 전달한다. 더불어 CIA의 집요한 추적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 한 장의 사진을 올린 용감한 한국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혹시 이 글의 내용이 ‘생활 마케팅’이 아니라 ‘생활 커뮤니케이션’ 아니냐고 따지시지 마라. 광고 마케팅을 하는 광고회사 사보에 실리는 글이니까(솔직히, 자료를 찾다 보니깐 그냥 그렇게 됐다).
그리고 주위에 재미있는 ‘생활 마케팅’ 사례가 있다면 언제든지 필자에게 연락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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