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대세가 되다
이어령 교수는 시대가 디지털화 될수록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의
역할이 강조된다는 ‘디지로그’의 뉴 패러다임을 외친다. 디지털이 가속화될수록 아날로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과 뒤섞여 어우러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넓게 표현하자면 그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아날로그에 대하여 ‘파형체’, ‘물리적인 것’, ‘사람에 의한 것’ 등 각자의 무수한 정의가 있지만 여기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사람냄새’의 아날로그이다.
사람 측면에서 이해하고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때로는 ‘느림의 미학’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효율성과 속도의 강조 속에
발생하는 무미건조함이 다시 아날로그를 불러 들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불고
있는 자전거열풍, 광고카피나 책표지, 포스터에 유행하는 캘리그라피(손글씨체)의 유행도 이 현상의 일부로 볼 수 있다.
2000년대로 넘어 온지도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다시 아날로그가 시선을 모으고 있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나
현상이 아니다. 단지 예전에 드리워진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제품, 브랜드, 디자인 너나 할 거 없이 아날로그의 옷을
입고 있다. 국내에서 만화는 더 이상 B급문화가 아니다. 한때 60~70년대만 하더라도 만화는 사회악이라고 핍박 받으며 불태워지던 천덕꾸러기에서 진화하여 하나의 문화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서점에서는 ‘마법천자문’과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가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고, 이원복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는 이미 국민서적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허영만의 작품 ‘식객’, ‘타짜’, 강풀의 ‘바보’ 등은 대학교 대출서적 순위 상위권에 자리잡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사례도 쉽게 볼 수 있다. 만화 속 케릭터 무대리와 둘리는 각각 10년, 20년이 넘도록 CF나 각종 제품으로도 수 없이 등장했고 여전히 활동 중이다. 이제는 만화에도 ‘작품’이라는 호가 붙는 시대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만화의 신분상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의 광고를 들여다보자. 앞의 두 가지 렌즈를 끼고 바라보면 두드러진 추세가 나타남을 볼 수 있리다. 요즘 들어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를 이용한 광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기업광고), 스카이 듀퐁(휴대폰단말기), 호반 베르디움(건설),
슈퍼오닝(식료품), 대우증권CMA(금융), 둘리대리운전(서비스), 롯데카드DC(카드), 11번가(인터넷쇼핑몰) 등 영역을 가리지
않아 더욱 돋보인다. 이런 광고를 모두 묶어 ‘만화풍 광고’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 만화광고로 이름 짓기엔 실사와 뒤섞인 것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범위를 넓게 그어본다.)
‘트랜스포머’, ‘쿵푸팬더’ 등을 3D,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2D애니메이션이라 한다면 이들 광고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이 아날로그적인 2D의 그림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만화풍 광고’가 넘쳐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기술적
진일보와 반대로 2D 그림이 득실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풍 광고’ 트렌드의 등장과 그 배경을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만화풍 광고의 시초로 넘어가 보면 의외로 주류광고이다. 1959년, ‘진로’광고에서 국내 방송광고로는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기법이 등장하였다. 런닝타임도 1분으로 상당히 길고 당시 아이들이 광고 CM송을 따라 불렀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그 이후로 1988년 오리온 프리토레이의 ‘치토스’, 96년 현대자동차 씽씽이까지 이어져 왔다. 처음엔 표면적으로 저연령층 고객을 공략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만화광고(완전히 만화로만 채워진)가 특정타겟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것이다. 아이 손에 단순히 차그림을 쥐어주면 몇 걸음 안가 금방 흘려 버리지만, 사탕을 쥐어주면 오래 토록 들고 다니는 심리인 것이다. 이면적으로는 앞으로 성장해 나갈 시장의 예비 고객층 마음 속에 브랜드의 씨앗을 심어놓고자 했던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그 시절의 세대들이 현재 30, 40대가 되어 그들의 충실한 고객층이 되어 있다. 현 주소를 짚어보면 진로소주는 소주시장의 제왕이요, 현대차는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치토스는 국민과자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현대차는 2009년 버전으로 하이브리드를 입혀 다시 씽씽이를 내놓았다. 아마 잠재적 시장인 하이브리드 카의 주 고객층이 될 싹 푸른 고객층에게 쥐어 주기 위한 사탕이 아닐까 싶다.
다시 떠오르고 있는 최근의 만화풍 광고와 예전의 만화광고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다. 기존의
만화광고가 ‘저연령층 타겟팅’이 주목적이었다면 현재는 ‘친환경’, ‘여성친화’, ‘친숙함’, ‘공감’ 등 다방면의 의도를 겨냥한다는
것이다. 아이 손 안에 머물던 것이 각종 형태로 변화하여 열 손가락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삼성 기업광고는 ‘친환경 이미지’를,
CJ홈쇼핑은 육심원 화백의 그림을 이용하여 ‘여성고객층의 시선’을, 러시앤캐시는 무과장이라는 가상의 케릭터로 ‘직장인 세대의
공감’을 공략한다. 이러한 시도를 잘 하지 않던 건설(호반 베르디움)과 증권(대우증권CMA/우리투자증권) 분야에서도 기존의 딱딱함을
벗어나고자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광고를 내보이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두 가지로 추려보았다. 첫째,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혼합. 광고에 애니메이션을 부분적으로 삽입하여
실사와 혼합시키거나 변화시킨다. ‘슈퍼오닝’과 ‘델몬트’ 광고가 그렇다. 이는 가족친화적인 느낌을
자아냄과 동시에 어린이와 어른을 등장시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모두의 눈을 모은다. 둘째, 광고에서 뛰어 노는 캐릭터. 스카이 듀퐁의 어린왕자, 러시앤캐시의 무과장, 롯데카드DC의 고길동은 광고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광고에 신선함과 친숙함을 불어넣는다. 예전의 광고 속 스타캐릭터인 펩시맨, 뽀삐, 물먹는 하마의 연장선상이다. 여기서 캐릭터는 하나의 브랜드마스코트가 되어 브랜드 연상의 매개체 역할이 된다. 또한 캐릭터의 등장은 스토리광고로도 무궁무진하게 활용 가능한 커다란 이점을 갖게 된다. 러시앤캐시는 무과장을 활용한 다양한 생활 속 에피소드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의 맛을 살려낸 광고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SKY듀퐁, 어린왕자 남자가 되다 싸이언의 프라다, 애니콜의 아르마니폰에 이어 나온 것이 바로 스카이의 에스티듀퐁(S.T. Dupont)이다. 그런데 기존에 봐오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럭셔리, 고품격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등장한다. 광고에 빅모델을 사용하지 않는 전략으로 차별화 해오던 스카이가 모처럼 색다른 빅모델을 모셔온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광고에서 볼 수 없었던 어린왕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광고는 누구나 어린 시절 읽어봤을 쌩떽 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 캐릭터가 등장하여 마음 속의 영원한 ‘어린왕자’가 남자가 되는 순간을 그려낸다. 마음속 영원한 어린왕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연령에 구애 받지 않고 성공적인 메시지를 전달을 이뤄낸다. 다음은 광고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다.
색’다른 모델의 덕으로 광고주목도와 모델적합성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어린왕자를 연기한 영국인 모델(Rory Williams)이 덩달아 관심을 얻기도 했다. 연령별로는 경쟁사의 명품폰과는 다르게 영 프로페셔널 타겟에 초점을 맞춘 광고인 만큼 20~30대의 뜨거운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여성소비자층에 대한 평가가 남성층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이는 어린왕자 캐릭터와 모델의 조합이 여성에게 더 어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번가 대한늬우스 이 광고는 대놓고 과거로 간다. 11번가광고는 인터넷쇼핑몰 광고로는 특이하게 대놓고 과거의 광고를 패러디한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라는 카피를 전국적으로 히트시킨 산아제한운동의 광고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둘을 비교해놓고 보면
틀은 다름이 없지만 시선을 비틀어 메시지를 달리 했다는 것이 새롭다. 패러디지만 패러디임을 몰라도 상관없다. 매번 등장하는 빅모델과
엇비슷한 메시지가 넘쳐나는(마치 광고 속 모습처럼) 속에서 ‘대한늬우스’를 차용한 옛 방식은 주 타겟층인 20~30대에게도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를 추억하는 4050세대까지도 동시에 주목시킬 수 있음을 잠재한다. 삼성 두근두근 투모로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클레이(점토)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삼성 기업광고의 예전 히트작이다. 그랬던 것이 3D그래픽으로 훈이를 그렸고, 이제는 동화책 삽화로 이어진다. 바로 삼성 기업광고의 ‘두근두근 투모로우’ 캠페인이다. 태양광 휴대폰, 초절전 LED, 리튬이온 2차전지 등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거운 대기업이미지를 벗고 친근함과 친환경 이미지 심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시도이다. 예전의 광고에 비해 임팩트가 없다는 반응도 더러 있지만, 친환경에 대한 쉬운 이해가 목적이었다면 의도에 부합한 광고라 할 수 있다. 태양광 휴대폰은 꽃으로, LED는 벌로 비유가 되며 난해한 신기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내고 있다. 예전 광고에 담아냈던 가족과 글로벌의 가치를 뛰어 넘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뛰고 있는 모습을 담아내고자 함이다. 힘을 뺀 것에 부응하듯 반응이 폭발적이지는 않다. 전반적으로 고른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국내 굴지의 초대형 광고주이자, 글로벌기업인 삼성이 기업의 영혼이랄 수도 있는 기업PR광고를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불고 있는 만화풍 광고부흥의 가장 앞장에 넣어볼 수 있다. 느림의 미학 광고는 시대를 반영하는 척도이다. 광고를 보면 그 시절의 트렌드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이에 광고는 하나의 비빔밥이라는 명제에 맞춰 이제까지 대중음악과 광고의 결합인 ‘팝애드’, 그리고 제약광고의 케쥬얼화에 이어 3탄 만화풍 광고의 부흥을 집어보았다. 2008년 광고트렌드가 CM송과 휴먼이었다면 올해는 팝애드와 만화풍 광고이고, 08년이 새로운 시도와 기술적 진일보였다면 올해는 친환경과 여유의 발견이라는 공통 틈새를 찾아낼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최저점을 지나 조금은 숨을 쉴 공간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빠름과 반복에 지친 사람들이 느림, 여백을 찾거나 다시 옛 것을 그리고 있다. 대중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독립영화 워낭소리, 자전거인구의 폭발적 증가, 그리고 막걸리의 유행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는 각자의 어릴 적 판타지로만 남아 있던 만화풍 광고가 득세하는 것과도 멀지 않다. 또 빅모델의 광고점령에 식상해 하던 소비자들은 캐릭터의 신선함을 눈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까다롭지 않고, 비싸지 않으며, 원하는 모든 연기를 해주고, 사건으로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이 만화와 케릭터가 인기를 얻는 이유다.스카이 듀퐁광고를 보면 이런 자막이 나온다. ‘어린왕자 넌, 18살이 되건 100살이 되건 여전히 어리고 아름다울꺼야.’ 그러자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한다. ‘싫어 난 남자가 될 꺼야.’ 그리고 만화를 입은 광고 역시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싫어. 나도
손 밖으로 나와 열 손가락이 될 꺼야.’ 시샵 : 유쾌아 윤진호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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