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가득한 재회 /

강단에 선 그녀의 모습을 한 번 봤을 뿐이었다. 카리스마 있는 듯 하지만 자상함이 배어있는 말투. 55기에 광고인을 꿈꾸는 여성들이 많아서인지, 그 때의 기억이 남아서인지.
여성으로서 광고계에 우뚝 선 선배광고인의 조언을 얻고자 하는 동기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이에 광고계에서 대표적인 여성파워를 보이고 계시는 금강오길비 권은아 본부장님을 다시금 찾게 되었고, 그녀는 우리들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대해 주었다.
훤칠한 키에 엄청난 동안의 얼굴, 처음부터 주눅이 든 웹진 5기!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솔직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우리는 금세 빠져들었고 그녀가 전하는 여성광고인의 삶과 미래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꿈꿔온 삶, 그리고 광고' /
어떻게 광고를 시작하셨나요?
사실은 영화감독을 제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 졸업할 때 MBC 피디로 시험을 봤죠. 그런데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제일기획에 입사한 것이 첫 직장이었어요.
그렇게 광고를 시작하게 되었죠. 그 때는 AE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갔어요. 벌써 15년이 흘렀네요.
광고가 차선책이었다니 놀라운데요, 꿈과 다른 현실 속에서 갈등은 없었나요?
물론, 있었어요. 다른 꿈을 꾸었었기에 중간에 계속 갈등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계속 고민하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학을 가게 되었죠. 사실 그 당시에도 영화를 전공할까 생각하다 마케팅을 선택했는데요, 유학 비용을 아끼고자 공부에만 집중했던 것이 1년 4개월 만에 석사를 따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미국유학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철없는 20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몰라요, 많은 것을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죠. 지방에서 올라온 저에게 서울이라는 벽은 이겨내야 하는 하나의 과제와도 같았거든요. 그렇게 공부를 했고 취직도 했지만, 광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 걸까?' 라는 걱정이 늘 앞섰어요, 뭐, 사실 약간 도피성 유학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당시의 저는 '나를 둘러싼 복잡한 것들을 잊고,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자'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그 와중에 유학의 길을 선택했어요. 돌이켜 보면 그때의 과감한 선택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미국 생활은 어떠셨나요?

방금 말한 것처럼 공부만을 위해서 미국을 갔던 것은 아니에요, 저를 돌이켜 볼 시간이 필요했죠. 돈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했죠. 사실 미국에서 느낀 점 중 가장 큰 것이 뭔 줄 아세요? 미국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나라라는 거예요. 우리나라만큼 열정적이고 일처리도 확실하게 한다는 생각이 절대 안 들었거든요. 참 우리나라는 대단한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인지 몰라도 세계적인 광고회사가 수두룩한 미국에서 일해야겠다는 환상이 사라졌어요. 내가 배운 거 내 나라를 위해서 쓰는 게 훨씬 더 좋겠다 싶어서 미련 없이 귀국했죠. 그리고 광고 일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때부터 광고가 너무 재밌어졌어요. 그 때 나이 서른 살이었어요.
Gold Miss? 단지 현실에 충실할 뿐 /
20대가 지금의 본부장님을 있게 한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여성 AE는 회사에서 5년을 버티기 힘들다고 들었어요. 여성 광고인으로서 일반적인 승진시기보다 훨씬 빨리 본부장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답은 하나에요. 매일매일 열심히 사는 거요. 적어도 여자라서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어요. 제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나 자신을 만족스럽게 하자며 일에 많이 집중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뭐가 되자’하는 생각보다 ‘무엇을 하고싶다’는 쪽에 치중했어요. 즉 임원이 되겠다라거나 팀장이 되겠다 하는 목표가 아니라 이런 브랜드를 하고 싶다, 이런 캠페인을 하고 싶다 하는 거죠. 제가 평소에 책, 잡지, 신문을 많이 보고 스크랩을 많이 해요. 또 영화도 많이 보고 친구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구요. 여러분들과 크게 다를 건 없죠. 사람들이 저를 보고 소위 골드미스라고 하는데 저는 결혼할 남자가 없어서 결혼을 못했을 뿐이고 (웃음) 가정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는 에너지를 일에 더 많이 쏟을 수 있었던 것 뿐이지, 성공하려고 사랑을 소홀히 한 적은 없던 것 같아요. 그렇게 모든 일에 있어 차곡차곡 적금 들듯이 살아왔죠.
여성이어서 불리했던 점이나 유리했던 점이 있으셨나요?
저는 제가 여자라서 차별 받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제가 둔해서 못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일단 저부터가 남녀를 구별해서 생각하지 않았고 여자라서 특혜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서서 했죠. 광고대행사가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굉장히 여성스러운 섬세함을 가진 남자들과 다소 남성스러운 과감함을 가진 여성들이 모여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생각해봐요. 사실 한 사람의 내면에 남녀의 성향은 다 들어있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세상의 편견을 버리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광고인이 되기 위해 해야 할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이 커야 하기 때문에 뭐든 많이 경험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마케팅 서적을 많이 본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을 순 없거든요. 수천, 수백만명 소비자들의 마음은 너무나 다양한데 그들의 마음을 다 알려면 경험이 많을수록 유리하죠. 특히 광고 일을 하다보면 내가 어떤 광고 어떤 제품을 맡게 될지 모르거든요. 또, 긍정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는 것이 필요해요.
즐겁게 열정적으로 도전하라 /
광고계 입문이 힘들다보니 걱정이 앞서는데요.
20대의 힘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슬럼프를 겪는 친구들에게 조언 좀 해주세요.
저는 유전적 특성인지 몰라도 모든 상황에 있어서 대책없는(?) 낙관주의적 사고를 하는 것 같아요. 20대 때 제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이유는 미래가 안보인다는 것 때문이었죠. 그런데 원래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것이더라구요. 미래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거죠. 자신이 얼마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도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바뀌게 되어 있는 거니까요.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기 보단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많이 힘들 때는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에요.
좋은 책 하나를 추천해 주신다면?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라는 책이 있어요. 20대 후반에 우연히 서점 진열대에서 본 책인데 제목에 끌렸었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은 별로 안 좋아했는데 한 장 두 장 읽다보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순간이나마 ‘이 책이 나를 즐겁게 해주는 구나.’라고 느꼈죠. 그래서 어떤 책을 추천해 주는 것보다 그냥 서점에 간 그 순간 제일 끌리는 책이 있으면 그걸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30대 때 읽었던 책 중에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이 있는데요, 이 책을 인생길라잡이 차원에서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매일매일을 좀더 열정적으로 살게 해 주죠.
예비 광고인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20대건 30대건 40대건 나이를 불문하고 다 힘든 일은 찾아와요. 곧 마흔을 바라보는 저도 아직 매일매일 세상사에 깜짝깜짝 놀라고 눈물 뚝뚝 흘리며 좌절하고 그러는 걸요. 저는 힘들 때마다 ‘세상이 나를 위해 움직여줄 거야.’ 라고 주문을 외워요,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는 무기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그 자신감은 어제와 오늘의 노력을 통해 나오는 것이구요. 책도 좋고, 영화도 좋고 일기도 좋고 자신만의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다른 사람과 정말 다른 점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만드세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도 열심히 살면 진짜 세상이 나를 위해 움직여 줄 날이 머지않아 올 거예요. 그날이 오면 비로소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광고인이 될 거라 믿습니다.
신년인 만큼 2010년 새해의 계획은 세우셨나요?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올해만큼만 유지 되었으면 좋겠네요(웃음) 욕심을 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팀원들을 비롯한 제 주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구요, 저희 회사도 올해 참 다사다난 했는데 내년엔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제 인생의 모토가 ‘좋은 건 나눠 갖자’인데 내년엔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개인적인 바램은 두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제 1년 정도 남은 박사과정공부를 무사히 잘 마쳤으면 하는 거구요. 마지막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금강오길비는 본부장님께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신다면?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금강오길비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가장 많이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내 존재의 의미이다.
인터뷰를 돌아보며 /
성공이라는 잣대가 어느 선으로 정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모든 일에 도전하려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권은아 본부장님은 그런 면에서 성공을 기획하는 여성 광고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좋은 건 나눠 갖자’라는 모토대로 50대에는 국제기구에 들어가 자원 봉사를 하고 싶다는 그녀. 세상은 넓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우리도 광고를 통해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광고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만남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또 느끼게 된 우리 이제는 그 힘을 우리가 보여줄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