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감성에 대한 치열한 집착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조선희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감성에 대한 치열한 집착’이다.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는 에너지가 되고 있음이 분명한 감성에 대한 집착이란 직관적 상상력의 또 다른 표현일 터이다. 비과학적 접근이라며 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직관이야말로 우리네 감성을 일깨워오지 않았던가. 감성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젊은 마음이 없으면 지탱하기 어려운 법. 그 젊은 마음때문에 그는 그리도 숨 가쁘게 셔터를 눌러댔던 것이 아니었을까?

시각 커뮤니케이션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현대광고에서 사진 없는 광고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일찍이 미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나 ‘사진의 작은 역사’같은 논문에서 소비대중사회에서 복제품으로서의 사진 예술에 특히 주목한 바 있거니와, 조선희 역시 사진을 통해 대중예술의 가능성을 보았다. 나무가 흔들리면 대개는 나무가 흔들린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나무가 흔들리는지 자신이 흔들리는지 궁금해 했고 그런 마음을 순간순간 카메라에 담았다.

>>광고사진의 특성상 사진을 찍어 보내면 거기에 카피를 얹고 손질을 하잖아요. 결과물이 좋으면 괜찮겠지만 사진이 영 이상하게 활용되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속상하고 상실감도 느끼지만 얼마 지나면 없어질 거라며 위로를 해요. 영화 포스터는 영화가 사라져도 어떤 식으로든 남지만 광고는 오래 가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되도록 트리밍 할 수 없게 찍어 보내요. 그냥 파일로 주면 제가 오퍼레이터에 머무는 게 아닌가 싶어, 제 사진 톤(tone)으로 다 만져서 줘요. 가끔 사진이 엉망이 된 광고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온종일 우울하지만 잘 나온 광고가 있으면 뿌듯함도 느껴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면 다른 영역을 넘보는데, 혹시 동영상 쪽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쉬움 같은 것은 없는지요?
가끔 동영상 광고나 영화를 한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완전히 전향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사진이 동영상보다 뛰어난 점도 있지만 분명 스틸 사진의 한계는 있으니까 언젠가는 해보고도 싶어요. 저는 제가 잘 할 수 있을 때 시작하는 성격인데 아직은 그 정도 그릇이 안 돼요. 그리고 광고감독이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죠.

>>저는 가끔 좋은 사진 한 장은 ‘조명의 미학’으로 빚어낸다고 생각해요.
빛이 없으면 사진도 없기 때문에 자연광으로 찍어도 그 빛을 잘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고, 인공조명을써도 그 빛을 잘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해요. 빛이 좋아야 더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확률은 조명의 역할보다 피사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더 높아요. 저는 조명을 공부한적도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어요. 김중만 선생님도 워낙 자연광을 좋아하셔서 조명에 대해 뛰어난 분은 아니에요. 저는 경험에서 테크닉을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만약 조명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피사체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조명발’이라는 말은 왜 생겼을까요?
조명을 볼 수 있는 눈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봐요. 외국에서도 조명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팀이 따로 있잖아요. 요즘은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요. 물론 빛과 조명은 중요하지만 제가 100% 갖춰야 되는 능력은 아닙니다. 제가 조명에 대해 다 알기보다 어떻게 하고 싶다는 감각을발휘하고 빛을 읽을 수 있는 눈만 있으면 되지 않겠어요? 나머지는 조명 전문가들에게 세부적으로 맡기면 되겠지요. 그는 피사체를 자기 스타일로 해석하고 피사체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사진작가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조명이란 하나의 배경이자 취향의 차이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따라서 그는 배경과 상관없이 제 빛깔을 내는 것들이 사물의 핵심이자 온전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에게 사진 작업이 엄청난 에너지가 솟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람은 배우 이정재였는데, 그의 얼굴을 신들린 듯이 찍으면서 사물이 제 빛깔을 내는 과정을 체득하였다. 이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깨달음의 순간이었을 터이다.
조선희 작가의 책 ‘왜관 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와 ‘조선희의 힐링포토’.
>>광고사진을 언제 처음 찍었어요?
대홍기획에서 샤프전자를 찍은 것이 1996년이었어요. 어떤 분이 잡지를 보다가 제 사진이 항상 눈에 띄었다고 하시며 모험이지만 한 번 일해보고 싶었다며 오라고 해서 처음으로 광고사진을 찍었어요. 잡지일도 처음에는 조그만 사진 한 장 찍는 거였어요. 그런데 잘 찍고 싶었기 때문에 진짜 열심히 많이 찍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되게 새롭다고 느꼈나 봐요. 그리고 당시에 하우스 스튜디오에 맡기면 대충 몇장 찍고 가버리는데, 저는 다른 스케줄도 없고 해서 죽기 살기로 찍을 수밖에 없었죠. 그 사이에 가슴 아픈 일도 좀 있었지만, 그 나머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픔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어요. 저 역시 광고회사 다닐 때 영혼의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쨌든 올인할 수밖에 없었겠네요.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 자리 잡고 하다보면 아픈 기억은 다 까먹잖아요. 나중에 가서 잘못 되었을 때 그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요. 잡지사진도 처음에는 제가 다른 사람 대신 갔었는데, 기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정재 찍었던 사진 되게 좋다고 하길래, 나도‘보그’ 같은 데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놀러오라고 해요. 그래서 갔더니 그 분이 제 포트폴리오 보고 두 컷 찍는데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해요. 그때도 한 7시간 정도 있었어요. 그분에게 여러가지 여쭤보고 사진 찍고 그랬는데 그 분도 저를굉장히 열정적으로 보셨나 봐요. 그 다음에도 그 분이 하는 일을 제가 계속했어요.

>>햇병아리 시절과 달리 지금 젊은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스스로 꾸준히 변신하며 젊은 피도 수혈해야 할 텐데 특별히 노력하는 점은 없는지요?
책을 많이 읽어요. 젊은 피의 수혈보다 생각의 전환이 굉장히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디어 발상과정에서 책을 보며 모티브를 얻기도 해요. 영화도 많이 보고 여행을 꼭 가려고 하고 사람들이랑 술도 많이 마셔요. 수다 떨면서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거든요. 사람들하고 술 마시며 3~4시간 얘기할 때도 있는데 꽉 막혀있을 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억지로 젊은 트렌드를 따라가려 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느끼고 대화 속에서 잡아내는 그런 것이겠지요.
무의식적으로 쌓인다고 봐요. 사실 잡지사진 찍으면 돈은 안 되는데 그 일이 굉장히 중요해요. 제 감각을 놓치지 않고 제가 해볼 수 있는 이것저것을 할 수 있는 열린 장이니까요. 저는 사실 촬영하면서 많이 배워요. 책상에서 배운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지 저는 현장이 되게 좋아요. 포토그래퍼에게는 순발력이나 순간적인 캐치가 굉장히 중요한데 제가 그게 빨라요. 막 게으름피우다가도 한 시간 뒤에 미팅이있으면 그 안에 다 준비를 끝내요.
그가 서 있는 오늘은 밟혔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잡초 같은 생명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시멘트벽을,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잡초들을 보면 난 언제나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난 벽을 뚫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잡초들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조선희의 힐링 포토’, 황금가지, 2005, 146쪽) 같은 진술은 사물을 ‘틀리게’ 보는 그의 작가정신이자 기쁘면서도 슬퍼했던젊은 날의 자화상이 아니겠는가.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가 정녕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은 잡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 수 있으리라. 해석해야할 피사체와 자신의 존재론적 고민이 동거하는 형국에서 오리무중인 스스로의 행방을 찾아야 했을 터이니까 그것은 그러하다. 그리고 모든 예술적 표현에는 작가의 사랑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었을 터이니까 그 또한 그러하다.

>>저는 누구와 대화할 때 항상 눈을 맞추며 말해요. 사진찍을 때도 눈을 맞추며 피사체와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이를테면 피사체와 무언의 대화 같은 것이 있는지요?
저도 모델의 눈만 보고 사진을 찍어요. 그 사람 전신을 찍든, 클로즈업을 찍든, 저는 상대방 눈만 보고 찍어요. 그런데 상대방도 좋은 컷이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 피사체 입장에서 알아요. 저랑 많이 찍어본 사람들은 “아까 그 마지막 3번째 컷 잘 나왔지?” 이래요. 그들도 저를 아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느끼는 건지, 아니면 저의 제스처가 달랐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귀신같이 알더라고요. 아무튼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에 무언의 대화는 분명히 있어요. 서로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셈이죠.

>>왜 우리에게 육감이란 말이 있잖아요. 육감적으로 느낀다는 것이 그런 경우를 뜻하겠지요?
그래요. 신기하더라고요. 너무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설명하라고 말하지 마세요. 저 같은 경우에는 클로즈업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거든요. 정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는데 때로는 몸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되게 친한 친구나 부부 사이라도 얼마나 오랫동안이나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겠어요? 몇 시간 동안 둘이 눈을 마주치면서 찍으니까 서로의 마음을 알 수밖에 없고 그것이 사진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죠. 사실 피사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픈 마인드라고 생각해요. 어떤 이미지만을 고집한다면 맨날 똑같은 이미지라 굳이 저랑 찍을 필요도 없고요.

>>피사체의 오픈 마인드를 말씀하시는 거죠?
양쪽 다요. 그 사람 얼굴에 검정을 묻혀서 찍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의 이미지와 다르게 찍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지금까지 자기도 몰랐던 자기 자신의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거랑 정장을 입고 입는 거랑 빈티지를 입고 있는 거랑 각각 이미지가 너무 틀리잖아요. 어떤 쪽으로 그 사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죠.

>>그렇다면 광고사진에 있어서 창의성이란 무엇일까요? 광고사진을 평가를 할 때 몇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잖아요.
광고사진에서 꼭 필요한 것은 새로움이죠. 그리고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만으로 광고가 만들어지지 않듯이 중요한 것은 크리에이티브를 알아보는 광고주의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뛰어난 아이디어를 내도 광고주가 사지 않으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잖아요. 그리고 광고사진의 창의성을 결정하는 것은 피사체를 해석하는 능력인데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일반적이고요. 좀 틀리게 말하면 감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뭐라 딱 맞게 정의 할 수는 없지만 집착은 분명 저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는 에너지가 되고 있음이 틀림없어요.
>>노력을 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창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안 되는 부분도 있는데, 셔터를 누를 때마다 가장 공들이는 포인트는 무엇인지요?
저는 헤어 메이크업이나 의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포토그래퍼는 스태프가 타고 있는 배를 목적지로 끌고 가는 선장이나 노 젓는 사람과 같아요. 저랑 같이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스태프들을 어떻게 준비시켜 어떻게 찍을까에 가장 공을 들여요. 또 촬영 전에 미팅을 되게 많이 해요. 모델이 제안하는 것도 있고 광고주가 제안하는 것도 있지만, 저는 헤어 메이크 업은 이랬으면 좋겠고, 옷은 이런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다며 제가 준비를 해요. 물론 제 아이디어가 선택이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설명을 많이 해요.

>>인생이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어요. 길다면 긴 것이 인생인데, 죽은 다음에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저는 죽을 때 사진을 찍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제가 80몇 살까지 살아있다면, 그 때도 지금처럼 많이는 아니어도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제가 죽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임신하 고 아기 낳고 하면서 6~7개월 정도 사진을 안 찍었었거든요. 다시 회복하는 데 3~4개월 정도 걸렸으니까 10개월 정도 일 을 안 했는데, 그동안 너무너무 괴로웠어요.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조선희는 마치 종군 사진기자처럼 죽는 순간에도 카메라를든 채 죽어가기를 꿈꾼다. “다음 생이 있다면, 만일 정말로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새가 되고 싶다. 철새가. 그리고 만일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철새 중에서도 바다 철새가 되고 싶다. 계절 따라 세계 어느 바다든 찾아 날아가 머물다 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바다 철새가 되고 싶다.”(‘조선희의 힐링 포토’, 60쪽)고 고백하고 있듯이, 죽은 다음에도 바다 철새가 되어 피사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이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장엄한 광경이 아니겠는가.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감성에 대한 치열한 집착’이다.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는 에너지가 되고 있음이 분명한 감성에 대한 집착이란, 말하자면 직관적 상상력의 또 다른 표현일 터이다. 비과학적 접근이라며 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직관이야말로 우리네 감성을 일깨워오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광고를 젊은이의 직업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젊은이의 직업이 아닌 젊은 마음의 직업이다. 감성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젊은 마음이 없으면 지탱하기 어려운 법. 그 젊은 마음때문에 때때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상상을 하면서도 그는 그리도 숨 가쁘게 셔터를 눌러댔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만이 볼 수 있고, 봐야만 하는, 그만의 감성으로, ‘사진의 작은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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