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새것보다 좋은 손때 묻은 느낌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조선희는 피사체의 재해석이 광고 사진 촬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아침 출근길에 화사하게 핀 목련꽃이 인생을 아름답게 살라고 말을 걸었는데 저녁 퇴근길에는 같은 자태인데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상은 저만치 홀로 있되, 결국 그 대상을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의 생각은 평범하지만, 이는 해석이 사라진 우리 광고 사진계에 따끔한 충고가 되기에 충분하다.

조아조아스튜디오의 조선희(1971~) 실장은 ‘왜관 촌년’으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벌써 자신의 세계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96년부터 ‘엘르’나 ‘보그’ 같은 패션잡지 화보나 광고사진을 촬영하여 지싯지싯 자신의 세계를 구체화시킴으로써 해외파가 주름잡던 국내 사진계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킨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 김중만에게 사사한 후, 그는 스승과 다른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지금도 피사체와의 질긴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담배 물고 옷깃을 여미며 청계천 언덕을 오르는 이정재가 인상적인 영화 ‘불새’(1997)의 포스터 사진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 이 사진은 “이 도시는 나에게 야비한 꿈을 키우게 했지…. 그러나 나는 그 꿈을 사랑한다.”라는 카피와 함께 도시 청년의 방황과 우수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그는 사진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분명했고, 자신의 생각을 술술 풀어내는 능력까지 지니고 있어 ‘거침없이 하이킥’을 할 수 있었다.

>>포토그래퍼들은 각자 자신의 영역이 따로 있는데 어떤 사진에 강하신지요?
저는 물건 사진 안 찍어요. 아니 못 찍어요. 그냥 제품을 찍는 것 자체가 싫고, 있는 그대로 찍어야 한다는 사실도 싫고, 그리고 있는 그대로 돋보이게 찍을 능력도 없고요. 찍고 싶은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서, 아예 저는 못 찍는다고 그래요. 광고사진을 찍을 때면 제품은 잘 못 찍으니까 제품만 따로 맡기라고 말해요. 포토그래퍼 중에도 살아있는 것을 잘 찍는 사람이 있고 정지된 것을 잘 찍는 사람이 있어요.

>> 그런 차이가 어디서부터 생기나요? 멘토나 스승한테 그렇게 훈련받아서 그런가요?
아니죠. 저는 처음부터 사람을 찍었어요. 처음에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시작했는데, 제가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데다가 조용한 성격이 아니라서 릴레이션십(relationship)이 전혀 없는 시간 자체가 굉장히 답답해요. 촬영할 때는 모델과 포토그래퍼 사이에 어떤 릴레이션십이 생기잖아요? 촬영이 끝나면 없어질망정 그 순간에는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피사체의 눈에 빠져들 수도 있는데, 제품사진 같은 경우에는 제 감정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하지만 인물을 찍을 때에는 제 감정을 넣을 수 있잖아요.

>>광고사진은 상업적 메시지라 제품이 메인이고 모델은 서브잖아요. 제품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그 제품 돋보이게 하려고 모델을 써서 연출하는 게 아닌지요.
요새는 많이 틀려졌어요. 옛날에는 제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휴대폰을 잘 보이게 찍어야 한다면 배우가 들고 있는 장면을 따로 찍어서 붙이더라고요. 배우나 모델들이 제품 들고 찍는 것을 싫어하니까 대부분 포스터를 보면 제품이 조그맣게 들어가지 크게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 순간만큼은 피사체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참 재미있게 들리네요. 셔터를 못 누를 만큼 어떤 격정적인 감정을 느끼세요?
굉장히 많이 느껴요. 촬영을 할 때 셔터를 못 누를 것처럼 막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올 때가 있어요. 피사체의 카리스마에 빠져드는 순간인데 포토그래퍼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사진서클에서 처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어요. 어떤 장면에 빠져들어 막 찍어야 하는데, 너무 초보라 핀도 맞춰야 되고 노출도 맞춰야 하고, 그동안 아저씨의 표정이 달라지면 어쩌나, 굉장히 짧은 몇 초안에 수십 가지 생각을 하며 셔터를 눌렀어요. 그때 진짜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겨우 셔터를 누르면서, 아, 이런 감정으로 평생을 사는 것도 굉장히 괜찮겠다 싶었어요. 그때 셔터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그때 사진 찍으며 평생을 사는 일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저는 제 사진에서 디지털 냄새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새것의 느낌보다 뭔가 손때가 묻어있는 것 같고 물건이라면 쓰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고 괜히 앤틱을 선호하는 것 같은, 새것보다는 누가 쓰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선희가 촬영한 영화포스터와 인쇄광고.
저는 제 사진에서 디지털 냄새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새것의 느낌보다 뭔가 손때가 묻어있는 것 같고 물건이라면 쓰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고 괜히 앤틱을 선호하는 것 같은, 새것보다는 누가 쓰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격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결과물은 차이가 큰가요?
다르죠. 사진의 감정상태가 틀려요. 그냥 셔터를 누르는 것과 그런 감정을 느끼는 상태에서 찍는 사진하고는 이야기하는 것이 틀려요. 사진이란 보이는 그 한 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거든요. 어떤 정지된 한 장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의 감정을 상상할 수도 있고, 그 다음 컷을 생각할 수도 있고. 사람마다 틀리겠지만, 저는 살아있는 사진이라면 그 밖의 이야기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병아리 감별사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좋은 놈과 나쁜 놈을 금방 구별한다고 하잖아요. 그렇듯이 사진을 펼쳐놨을 때 사실 0.01mm 정도의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그 미세한 감각의 차이를 매순간 느끼시는지요?
진짜 괜찮은 사진은 0.01mm 차이가 아니에요. 차이가 없이 이것이나 저것이나 똑같을 때도 있지만 저는 알아요. 1백 컷을 찍었을 수도 있고 1천 컷을 찍었을 수도 있지만, 정말 예술이라고 느끼는 것은 한 컷뿐이에요. 진짜 많아야 두 컷인데, 그 한 컷을 위해서 찍는 거죠. >>세대교체가 빠른 사진계에서는 나이가 들어가며 감각이 떨어질까봐 걱정도 많을 텐데요.
아니에요. 외국에서는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 같이 나이가 많아도 대우를 받으며 촬영을 하는 포토그래퍼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세대들이 활동을 멈추고 있는데, 그 이유가 나이가 들어서 감각이 떨어졌다기보다 24~25살짜리 젊은 잡지 기자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되는 사람들하고는 일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강해 나이가 있고 연장자면 대우를 해줘야한다고 생각을 하나 봐요. 그러다보니 잡지에서 사라지고 그래요.

>>트렌드나 감각이 못 미쳐 새로운 사진작가를 찾을 때, 광고 창작자들은 연륜보다는 젊은 실험정신에만 유달리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네. 김규환 감독도 이제 한 물 갔다고 생각하니까요. 언젠가 저도 그렇게 되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나를 안 찾아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엄습해 와요. 그래서 감각은 더 용기가 있고 더 열정적인 젊은 사람에게 열려있다고 봐요. 사실 나이가 들면 더 세련되고 더 고급스러워지고 더 안정적이게 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크리에이티브가 떨어질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노력을 해야겠죠.

>>사진의 세계에서도 그렇게 회전주기가 빠른가 싶어 놀라울 뿐이네요.
한번 떴다가 2~3년 뒤에 끝나는 포토그래퍼가 되게 많아요. 제가 처음 사진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서 그걸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거죠. 우리나라 크리에이터의 나쁜 점 중의 하나가 뭐 좀 괜찮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갔다가 우르르 빠져나오고 하는 성향인데, 이쪽 바닥이 더해요. 3년 반짝하다가 없어져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너는 그 단계를 넘어서지 않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나태해질 수는 없잖아요. 사실 디지털 시대가 되고 유학 갔다 와서 새로운 사진을 선보이는 사람들도 많아요. 물론 제가 그 사람들의 사진 톤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제 것을 어떤 식으로 유지하며 새로울 수 있느냐, 아니면 조금 더 다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느냐, 이런 데에 제 생존이 달려있어요.

>>지금 ‘내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저는 제 사진에서 디지털 냄새가 나지 않도록 노력 하고 있어요. 디지털 사진이 플라스틱적이라고 느꼈거든요. 사진 한 장에는 더 열어보고 싶은 어떤 깊이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디지털 사진에는 그런 느낌이 없어서 처음에는 안했어요. 이제는 피해갈 수 없어서 하기는 하는데, 디지털로 사진을 찍더라도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톤으로 찍으려고 해요. 필름으로 낼 수 있는 색깔이 있고 디지털로 낼 수 있는 색깔이 있는데, 제 사진은 굉장히 신선한 새 것의 느낌은 없어요. 뭔가 손때가 묻어있는 것 같고, 어떤 물건이라면 쓰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고, 괜히 앤틱을 선호하는 것 같은, 새것보다는 누가 쓰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그동안 메가패스 FTTH, 지오다노, 나이키, LG 사이언, 삼성 애니콜 등의 광고 사진은 물론이며 가수 이효리나 민효린의 앨범 재킷, 그리고 영화 ‘불새’, ‘바이준’, ‘해안선’, ‘블루’,‘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그리고 ‘황진이’의 포스터를 찍었다. 그는 배우나 모델들의 표정이나 동작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으려하지 않고 그의 생각을 그들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사진 예술가의 길이라고 보았다.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동안 찍은 여러 이미지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여러 이미지에 새것의 느낌보다 뭔가 손때가 묻어있는 것 같고 누가 쓰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혼을 다했다. 피터 린드버그 같은 패션 사진계의 거장을 꿈꾸면서도 단순히 그를 따라감이 아니라 사진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깊이감 있게 만들어감으로써 그 꿈에 한 발짝 다가간다고 보았다.
>>제품에 따라 연출의 포인트가 달라질 것 같은데요.
저는 늘 같은 맥락으로 해요. 다만 다르게 보여주려고 할 뿐이죠.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광고 콘셉트가 슬림(slim)이라면 슬림만 잘 나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전지현이라는 모델이 슬림이라는 명제 하에 어떻게 녹아있느냐가 제일 중요하죠. 그냥 예쁘게만 찍은 사진은 죽어있는 사진입니다. 예쁜 전지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지만, 정말 인간적인 느낌을 내포하고 있는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올림푸스 광고에서는 보아를 지금까지와 다른 이미지로 찍는 것이 명제예요. 지금까지 보던 보아 말고 성숙하지만 뭔가 여인의 농후한 요염함이 담긴 이미지를 좀 세게 찍고 싶었어요. 이효리를 찍었던 애니콜 같은 경우에는 발랄하고 펑키하면서도 섹시한 효리를 찍으려고 했어요.

>>디렉터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모델의 감정을 끌어 들이는 게 중요할텐데, 어떻게 하세요?
느낌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게 찍어야 해요. 피사체가 된 배우나 가수가 제 앞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해요. 예쁜 척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니까 상대방이 재밌게 놀도록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방향을 맞추기 위해 설득도 많이 해요. 재미있는 것은 피사체가 포토그래퍼를 싫어하면 사진이 굉장히 이상하게 나온다는 거에요. 피사체가 포토그래퍼의 카메라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데, 포토그래퍼가 싫으면 카메라를 좋은 눈으로 바라보겠어요?

>>피사체를 놓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표현하려는 포인트가 광고 창의성의 결정 요소일 텐데, 이때 무엇에 가장 중점을 두는지요?
사진 속에서 피사체가 살아있음이죠. 같은 사람을 찍어도 제 식으로 그걸 소화시켜서 다른 사람을 만들어 내야지 그게 가능해요. 제가 찍은 비나 이효리는 다른 사람이 찍은 비, 이효리와는 100% 틀리거든요. 조선희가 찍은 비가 확실해야지만 그 클라이언트가 저와 일하는 목적과 이유를 달성하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눈으로 그 피사체를 재해석하느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 조선희는 피사체의 재해석이 광고 사진 촬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평범한 진리다. 아침 출근길에 화사하게 핀 목련꽃이 인생을 아름답게 살라고 말을 걸었는데 저녁 퇴근길에는 같은 자태인데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상은 저만치 홀로 있되, 결국 그 대상을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비주류로 살아온 그의 지난날을 반영하듯 그의 생각은 평범하지만, 이는 해석이 사라진 우리 광고 사진계에 따끔한 충고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진이란 보이는 그 한 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말초적인 주목만을 추구하는 동시에 똑같은 패턴을 나타내는 많은 광고 사진들을 반성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깊이감이 묻어나는 사진이든 내재적 드라마(inherent drama)가 있는 사진이든, 창의적인 작가정신으로 해석되지 않은 채 온갖 매체에 창궐하고 있는 저 이미지들은 한갓되고 부질없는 ‘돈질’이 아니겠는가. 그는 ‘다르다’는 단어는 모르는지 연신 ‘틀리다’는 말을 계속했는데, 이 역시 다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뭔가 그 이상의 다름이 있어야 한다는 그만의 재해석이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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